누가 내 이웃인가?
Who is my Neighbor?

언 젠가 신문 기사에서, 자신을 크리스찬이라고 소개한 어느 백인이 ‘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에서, 이웃을 백인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보았습 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지, 자신과 다른 이방인을 사랑하 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말이었습니다. 지나가는 강아지가 하품할 만한 말인데, 놀랍게 도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 때로 우리를 더 욱 놀라게 합니다. 배우지 못하고 행동이 거친 사람들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 라, 배움이 많고 멀쩡하게 옷 잘 차려입은 신사 숙녀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성경에 그런 사람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유대인의 율법교사 입니다. 그는 꽤 경건한 분이었고, 나름 성경 말씀대로 그 누구보다도 율법을 지키며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신사였습니다. 그는 성경 지식도 대단했습니다. 영생 얻는 길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있다고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 한 그가 재미있는 질문을 예수님께 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을 잘 알고 실천해 왔는데, ‘제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 질문의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 때만 해도, 유대인들은, 유대인 외의 이방 사람들을 별로 사람취급하고 살지 않았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이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입에서, “네 이웃은 유대인이다”라는 답을 듣 고 싶어했는지 모릅니다. 이웃 사랑의 율법은 오직 유대인들사이에서만 실천할 수 있 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확인코자 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고, 이방인들을 지옥의 불쏘시개 정도로 생각하며 사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유대인의 마음을 물속 들여다 보듯이 다 아시는 예수님 은 아주 짖궂게, 예화를 하나 드셨는데, 그 예화엔 유대인이 싫어하는 사마리아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예화를 다시 한 번 묘하게 뒤트셨습니다. 예수 님 예화의 주인공인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이 아니라, 강도만난 유대인을 도 와주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늘 사마리아 사람들보단 옳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콧대높은 유 대인이 듣기에 매우 불편한 예화였습니다. 이건 마치, 유색인종이 이 미국땅의 주인이 고 백인들이 이제 중남미 캐러밴이 되어, 미국 땅으로 밀고 들어오는 예화와 같습니 다. 질문의 주체를 바꾸어,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율법교사의 생각에 따르면, 강도만난 유대인이 어떤 어려움을 겪든지 사마리아 사 람은 모른 체해야 합니다. 유대인이 피를 흘리며 죽던지 살던지, 신경쓰지 말아야 합 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예화중에, 그 사마리아인은 뜻밖에도 강도 만난, 그 유대인을… 아니 자기 동족도 길거리에 버려두고 떠나버린 거반 죽게 된 그 유대인을 정성껏 도와 주고, 살려주었습니다. 이 예화후에 예수님이 다시 율법교사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누 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예수님의 이 질문이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 내 이웃인 가? 율법교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질문은 비슷한 것같지만, 실상은 주어와 목적어가 바 뀐 질문입니다. 유대인은 누가 나같이 잘난 사람, 옳은 사람의 이웃인가를 물었고, 예 수님은 누가 저같이 못나고 불쌍한 사람의 이웃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인종과 신분에 상관없이 강도 만난 자를 돕는 것이, 진정한 이웃 사랑이라는 교훈입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누구이든, 선 한 이웃이 되어주는 동산가족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19.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