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결별
Breaking up in Grace

인생은 만남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부모를 만나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배우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좋은 직장 선후배, 동료를 만나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부부사이에 태어난 아이들과 만나서,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부모, 배우자, 자식, 직장 등 인생의 큰 변화를 가져다줄 굵직굵직한 만남도 있지만, 그 사이에도 선생님, 친구, 교회, 목사님, 장로님, 셀목자, 동네 이웃 등등 크고 작은 수많은 만남들이 이루어져 인생이 만들어집니다. 모든 만남이 행복하고 영원하면 너무 좋겠지만, 사실 어떤 만남은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개와 고양이를 한 우리에 넣어 둔 것처럼, 서로 함께 있는 시간이 불안하고, 두렵고 괴로운 그런 만남도 있습니다. 서로가 잘 살 수 있는 길은, 헤어지는 것뿐인 그런 만남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아무리 힘든 관계라도 언제나 이별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이별은 마치 사람을 잃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엔, 너무나 쉽게 별 일 아닌 일에도, 조금만 힘들어도, 이별을 떠올립니다. 가정도, 교회도, 직장도, 그리고, 친구도, 너무나 쉽게 서로 헤어지려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관계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부부 생활에도, 20대, 30대, 40대, 그리고 60대 이후의 삶이 여러 번 변화됩니다. 오늘 나이 60이 넘어 함께 하는 고마운 아내와 30대, 젊은 치기에 울컥 하는 마음으로 헤어졌으면, 얼마나 아쉬울 뻔했는가 가슴 쓸어내리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늘 인내심을 갖고,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성공적인 인간관계에 매우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함께하고 싶어도 함께 할 수 없는 관계도 있습니다. 삼촌과 조카 사이였던 아브라함과 롯은 두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서로 소유가 많아지다 보니 서로의 목자들이 다투는 일이 많아져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서와 야곱도 유산 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자칫 살인이 벌어질 것 같아서, 헤어지게 됩니다. 살다보면 종종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마치 강아지와 고양이가 한 우리에 있는 것처럼, 함께 있다가는 서로 크게 상하여 죽을 수도있다고 판단이 될 때에는 할 수 없이 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헤어질 때에는 ‘은혜로운 결별’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만남도 중요하지만, 끝이 좋아야 다 좋다고, 헤어짐은 더 중요합니다. 비즈니스 첫 인상도 중요하지만, 손님에게 물건을 팔지 못하더라도, 비즈니스 끝 인상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사업장을 떠나면서, 저주하고 맹세하여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자기뿐 아니라 남까지도 오지 못하게 할는지, 아니면 자기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수 있는지는, ‘헤어짐을 어떻게 마무리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헤어짐이 복이 되려면, 끝까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축복함으로 헤어져야 합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 제자들과 이별하실 때, 끝까지 자기에게 속한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가롯 유다까지도, 그의 배신에 대해 격노하고, 그를 저주하시기 보다는, 차라리 저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하시면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성경은 원수도 사랑하고, 축복해 주라고 말씀했습니다. 만남도 중요하지만, 헤어짐은 더 중요합니다. 천사같이 만나 원수같이 헤어지더라도, 그 끝을 아름답고 은혜롭게 마무리하면, 그 경험이 또 다른 멋진 시작을 이루어 줄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만남과 헤어짐이 다반사인 인생에서, 최선을 다해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며,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다면 은혜로운 결별로, 오히려, 풍성한 축복을 주님께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2.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