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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즉불통의 은혜
Grace of ‘Meetings’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원활하게 소통하면 고 통이 없어지고, 서로 통하지 않으면, 고통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부 부간에도 대화가 잘 되지 않고 서로 단절되어 있으면, 행복한 가정 생 활을 누릴 수 없습니다. 공동체도 서로의 생각을 잘 소통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행동이 강요되어질 때, 고통을 겪는 구성원이 생기게 됩니 다. 그러므로 소통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선 부득이 함께 모여서, 상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든, 교회든, 사회이든지, 이 세 상엔 많은 회의들이 있습니다. 성경시대에도 주요 안건들을 논의하는 공의회 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이방인이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될 때의 자격 조건에 대해 서로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이야 기가 나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에도 교인총회, 제직회, 당회, 각 기관 및 위원 회의 등등 크고 작은 회의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장점도 있지만 힘든 일들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서로의 마음이 상할 수도 있고, 좋지 않은 생각으로 하나 가 될 때, 교회 공동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건설적인 비판이라고 포장 된 신랄한 험담이 오고 갈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모두 회 의에서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회의나 모임에서 실망하게 되면 신앙생 활에 큰 타격을 받고 교회를 떠나게도 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회의를 자주 하면, 신앙생활에 회의가 들 수 있다’입니다. 강물이나 호수에 녹조 현상이 심 각해지면 그 안에 있는 모든 물고기들이 다 죽게 되는 것처럼, 회의의 부작용 이 심각해지면, 교회 자체의 존속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에, 때로 목회자들은 교 회 모든 모임들을 잠시 멈추게 하기도 합니다. 제직회의도 없애고, 기관모임, 구역 모임, 셀 모임, 모두 중단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이기를 폐하는 어 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절)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인의 모임은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가운데 거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실, 몇 명이 모 이든지, 아니면 누가 모이든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 능력을 공동체내에서 보고 누리려면 반드시 모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모임에는 아주 중요한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 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야한다’는 것입 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외에는 아무에게도 아무 런 약속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교회 회의와 모임을 통해서 시험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공동체가 약해지고 신앙생활에 회의가 들게 된 이유는, 모 여서 회의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모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는 11월달과 12월달에는 내년을 바라보면서, 크고 작은 회의들이 많은 달입 니다. 새로운 임원을 선출하는 각 기관 회의들, 제직회, 교인총회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런 회의들에 꼭 참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함 께 기도하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논의했을 때, 가장 지혜로운 결정을 내 리게 됩니다. 그 회의 결과로 인해, 놀라운 교회 부흥과 함께 더욱 큰 기쁨이 신앙 공 동체위에 임하게 됩니다. 우리 동산공동체위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마다 놀 라운 부흥과 ‘통즉불통’의 기쁨이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19.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