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선교 간증문 Guatemala Testimony by 박용식 선교사

저 는 어려서는 교회를 안 다녔습니다. 안 다닌게 아니라 못 다녔습니다. 당시 우리 시골 교회에 가면 사탕도 주고 좋은 연필과 공책도 얻을 수 있어서 교회에 정말 가 보고 싶었는데 못갔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려서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또 가 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집에서 심부름도 하고 또 일나가신 형님과 형수님을 위해 조카들하 고 같이 놀아주면서 집을 봐야 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시절을 어렵게 보내고 직장생활을 열 심히 하다가 군대 갔다와서 옛 직장에 다시 나가서 생활 하던 중에 사장님께서 미국에 한번가 서 열심히 생활하면 한국보다 빨리 성공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방법을 찾고 찾으셔서 우여곡 절 끝에 미국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당시 비자 받기가 정말 어려웠었는데 정말 고마운 분입 니다. 일가친척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에 혼자와서 처음에는 정말 일밖에 몰랐습니다. 열심 히 일만 하면서 돈도 조금씩 모으며 살다가 한국에 나가서 어여쁜 아가씨 가옥란씨를 만나서 결혼도 했습니다 .

그럭저럭 생활 하던중에 친구를 잘못만나서 조금 모아 두었던 돈을 다 잃어버리고 또 조그마 하게 하던 사업도 쫄딱 망했습니다. 아이들 우유값도 없을 정도로 정말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 에 ‘원래 불교집안이었던’ 아내가 어느 분의 인도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둘데리 고 남의 차를 얻어타고 교회다니는 아내가 안스러워 제가 교회를 데려다 주곤 했습니다. 이렇 게 아내를 교회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생활을 약 3-4년 하게 되었을 때, 어떤 집사님의 권유로 예배를 드리러 교회당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가 시작되면 머리가 너무 아파서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또 찬양을 부르면 기침이 한없이 나와서 숨도 못쉴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이럴 때 저는 할 수없이 밖으로 나와 차안에서 예배 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세례를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저는 웬 지 그냥 겁도나고 두렵기도 해서, 세례를 안 받으려고 피해다녔습니다. 그러다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세례 받은 그 다음 주일, 예배시간만 되면 괴롭게 했던 머리 아픈 증세가 싸악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설교 말씀만 시작되면 목사님의 말씀이 자장가가 되어 저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기고 잠이 왔습니다. 이를 악물어도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씀 전하시는 목사님이 얼마 나 답답했을까 생각됩니다 .

그러던 중, 교회 행사가 있어서, 성극을 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제가 전도자역할을 맡게 되었 습니다. 그 때 왜 저같은 날라리 새신자에게 전도자 역할을 맡겼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안됩니 다.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맡겨진 역할이니까 저도 모르게 열심히 대사를 외웠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연극에 신경을 쓰다보니 설교 시간중에 조는 문제가 완전치는 않지만 괜찮아졌습니 다. 아마 성극에서 제가 맡은 역이 전도자역이어서 그랬나봅니다. 연극은 하나님의 도우심으 로 아주 잘 끝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가끔 말씀중에 허황되고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경우 를 제외하곤 예배시간에 조는 일이 거의 없는 것같습니다. 지금 나의 믿음은 깊지는 않지만 , 나에게 맡겨진 직분을 항상 기쁘게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또 나누며 생활 하려고 노력중에 있습니다. 오늘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주님은 늘 우리 가정을 사랑하셔 서 사랑스럽고 여우같은 아내와 곰같이 우람한 아들 또 토끼같이 또랑또랑한 딸을 주시고 또 저를 이 자리까지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온전히 주님께 의지하고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또한 고마우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신 선교의 명령을 최선을 다하여 따를 것을 다짐합니다. 샬롬. 2019.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