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머리의 어린이 (A two head child)

  몇 년 전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면서, 이스라엘에 머물게 되었는데, 제 눈에 비친 유대인들의 모습이 특이하게 보였습니다.  생긴 모습이 천차만별로 다양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오래 전 나라를 잃어버리고, 디아스포라가 되어 온 세상을 떠돌다 다시 모여 보니, 타민족들과 피가 많이 섞여 모습이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아프리카 쪽에서 온 유대인은 흑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동구라파에서 온 유대인들은 백인을 닮았습니다.  동양에서 온 유대인은 동양인을 닮았습니다.  그들의 서로 다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한가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서로 모습이 다른데, 어떻게 한 나라를 이루어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입니다.  미국 인디언은 인디언 피가 8분의 1만 섞여도 인디언이라고 하는데, 저들은 유대인이 되는 어떤 기준이 있는가? 질문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으로 인정받는 여러가지 기준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조상중에 유대인이 있어야 하고, 유대교에 헌신해야 하는 그런 절차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유대인을 가려내는 더 좋은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두 머리의 어린이’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머리가 둘인 아이가 태어난다면, 이 아기는 두 사람인가, 한 사람인가?’라고 랍비가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탈무드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만약 뜨거운 물을 한 쪽 머리에 부었을 때, 양쪽이 다 비명을 지르면 한 사람이고, 한 쪽만 비명을 지른다면 두 사람이다.’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참 유대인은 ‘다른 유대인이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을 마치 내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모두 한 몸된 지체들입니다.  어떻게 교회의 구성원들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서로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고, 다른 사람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한 몸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건 상관없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분명이 한 몸이 아닐 것입니다.  

  한 몸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같은 지체들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모이기에 힘쓰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체들의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 각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오늘 2부 예배후에 막바로 사역박람회가 열리게 됩니다.  사역박람회는 교회의 제반 사역들을 모든 성도님들께 소개하고, 각 사람의 은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교회 사역에 동참하게 하는 행사입니다.  교회는 그 구성원들의 참여와 수고로 아름답게 자라고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입니다.  성경은 교회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은사와 소유를 사용해서 서로 섬길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된 공동체로 아름답고 건강하게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