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두려움
Love and Fear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가져 본 생각은, ‘빈말이라도 따뜻하게 건네는 게 사랑인가, 아니면 아프더라도 참말을 해 주는게 사랑인가’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보다는 언제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성경은 만사가 때와 기한이 있고,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어 놓은 아기가 넘어졌을 때 아이를 바로잡겠다고 야단을 치는 것은 경우에 합당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아이가 비틀비틀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울면, 아이 부모는 아이를 야단치지 않고 돌부리를 ‘떼찌’하면서 아이의 아픈 마음을 달래줍니다.  이렇게 자신이 연약해서 넘어지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붙들어주고 지지해주면 아이의 마음에 불안감이 사라지고 아이는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그러나 청년 나이가 되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주변을 떼찌하며 야단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아픈 무릎을 감싸며 빨리 일어나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혹시 자신이 조심성이 없었는지, 무리하게 뛰어 다닌 건 아닌지, 등등 아프더라도 문제를 직면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약했을 때 넘어진 것은 ‘약한 것이 잘못은 아니기에’, ‘주변 환경을 “떼찌”하면서’ 이해를 받고 용납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강할 때에 넘어지는 경우는 다르게 반응해야 합니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늘 자신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주변 환경 때문이라고 불평하고, 남을 ‘떼찌 떼찌’ 원망한다면, 미성숙한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른아이가 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언제 어떤 말을 해야 할 것인지 때를 잘 분별하여,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경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동시에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면, 마음의 불안감이 사라지고, 한없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고, 건강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우리 잘못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마귀를 십자가로 ‘떼찌’해 주셔서 우리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일으켜 주시고, 온전히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 안에만 거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면, 늘 조심성 없이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자신이 잘못한 일도, 모두 마귀 탓, 세상 탓,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자칫하면 늘 우는 소리만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신을 두렵고 떨림으로 조심스럽게 돌아보는 회심의 태도는 언제나 지혜로운 것입니다.  때로 빈말이라도 따뜻한 말을 서로 건네어 피차 위로받고 힘을 얻을 필요가 있지만, 동시에 아프더라도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교훈과 책망을 받아 나쁜 삶의 습관을 고쳐야 건강한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그분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조심하는 삶입니다.  성경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게 하는 것이 아니요, 덕을 세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늘 주의 사랑안에 두렵고 떨림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는 경건한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201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