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나?
Why do we call God ‘the Father’?

어느 골프장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앞 팀이 돈내기를 하는지 너무 플레이가 느려서, 뒷팀 손님들이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형제들이래요.’ ‘아니 돈을 얼마나 걸었기에 형제들이라면서 저렇게 죽기 살기로 골프를 치나.’ 그러자 캐디 아가씨가 말했습니다. ‘돈이 아니라요. 진 사람이 아버지 모시는 내기를 하는 거래요.’ …. 수억건의 SNS-소셜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엄마와 관련되어 사용되는 언어는 대부분 밝고 긍정적인데 반해, 아빠와 연관된 단어들은, ‘싫다. 모르다. 무섭다. 싸우다. 힘들다.’ 등등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싫고, 무섭고, 힘든 존재.” 블로그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에 그려진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요즘 아버지 모습이 이렇다면,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주변에도, 가정을 소홀히 하고, 늘 밖으로 돌면서, 밤 늦게 술 마시고 들어와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도 아버지는 ‘싫고 무섭고 힘든 존재’였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나 궁금했었습니다. ‘싫고 무섭고 힘든 존재’인 이 세상 아버지들의 모습은, 사랑많으신 하늘 아버지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사실, 성경에 나타난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주님의 모습은, 어머니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는지,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동물의 세계에는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물의 왕국에 새끼 낳아 키우는 어미는 있어도, 인간과 같은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족제도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창조한 그 순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까지 말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아… 알고보니, 아버지는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우리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안에 아버지를 새겨 넣어 주셨습니다. 정말 온전하고 멋진 아버지 상을 주셨습니다. 우리안에 새겨진 이 아버지 상이 우리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바로 그 하나님 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그 품격있는 아버지 형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아버지의 모습을 죄로 인해 타락한 인생들이, ‘싫고, 무섭고, 힘든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함께하고 싶지 않은, 추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버지의 품격을 잃어버리고, 아버지라는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잃은 세상엔, 동물의 왕국- 적자생존 양육강식, 짐승같은 본능과 죄만 남았습니다. 빈곤, 범죄, 무지, 그리고, 동성애를 비롯한 온갖 가정 파괴의 죄악이 관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버지 주일, 저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안에 새겨진, 그 아버지의 모습을 꼭 다시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고,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인도하고, 공급하고 보호하는 그 아버지 형상을 꼭 회복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버지가 회복되면, 가정이 회복됩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부여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깨닫고, 실천하면, 자녀들이 살아나고 가정이 행복해지고, 그 결과 함께 사는 공동체와 세상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오늘 아버지 주일, 우리에게 아버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모든 영광을 돌리고, 또한 그 동안 가정을 부양하느라 애쓰신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버지 주일인 오늘, 모든 세상 남자들이, 하늘 아버지의 형상을 따라, ‘긍휼, 용서, 치유, 회복, 인도, 공급, 보호하는’ 아버지 모습을 온전히 회복하여, 가정을 복되게 하며, 세상을 복되게 하는데 존귀하게 쓰임받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샬롬 2021.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