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신 우일신
To be reformed everyday

오는 10월 31일 토요일은 종교개혁 기념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일을 기념하여, 우리는 오늘, 종교개혁 주일로 지킵니다. 중세 종교 개혁 당시, 교회는 많은 신앙 규범들을 만들어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교회의 전통들은 처음엔 모두 선한 의도로 시작됩니다. 성도들의 신앙을 돈독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일상생활에 잘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때로 여러 신앙 전통들은 그 본래 의미가 퇴색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는 암적인 존재들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예들이 있지만, 특별히, 중세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던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카톨릭 교회는 고해성사를 비롯한 일곱가지 성사를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이 모든 신앙행위에 관한 규례는 성도들이 더욱 온전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선한 의도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신앙 전통이 시간이 지나면서, 묘하게 뒤틀려졌습니다. 신부앞에서 하는 고해성사는 요한일서, 1장 9절에 기인합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모든 죄와 불의를 깨끗케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는 늘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의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하면, 말이 새 나갈 수 있기에, 신부님앞에서 합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신앙 전통입니다. 그런데 중세에 이르러, 이 전통에 면죄부가 첨가되었습니다. 면죄부를 돈주고 사면, 고해성사가 완료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복잡하게 신부님앞에서 미주알 고주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대신에, 돈 얼마를 내면, 자신의 죄가 모두 깨끗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말에 열광했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신자들에게 면죄부를 팔아, 순식간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참으로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얼토당토 않은 신앙 행태가 교회안에서 자행되자, 돈이 없어서 면죄부를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은 큰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더욱 멀고 험하고 힘들어졌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어야 하는데, 이제는 가난한 사람이 천국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어졌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고해성사가, 면죄부와 함께 교회의 돈벌이 수단으로 크게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모든 잘못된 교회 전통에 대해 과감히 개혁을 외친 사람이,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입니다. 그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슐로스 교회에 95개 조의 반박문을 붙이고,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을 적시하며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막연히 카톨릭 교회에 대한 반발이 아닙니다. 종교 개혁의 주된 정신은, ‘하나님의 말씀 운동’입니다. 사람들이 헛되이 만든 신앙 전통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회개 운동입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면죄부에 대해 말하지 않고,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회개를 통한 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선포하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우리 선행의 결과가 아니라 말씀했습니다. 종교개혁가 마틴루터는 ‘성도가 하나님께 이르는 길’에 교회가 만들어둔 모든 쓸데없는 전통들을 다 파쇄하고, 성도들이 하나님과 직접 말씀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길을 시원하게 열어 두었습니다. 이것이 중세 종교개혁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 특히 기독교 역사에 언제나 사람이 만든 전통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갈등이 있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의 순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선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신앙생활이 일일신 우일신, 늘 새롭게 개혁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0.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