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물며 너희일까보냐
Will he not much more

달라이 라마는 티벳 불교의 고승입니다. 그는 1959년 중국이 티벳 합병을 결정했을 때, 해외로 망명하게 됩니다. 당시 중국의 강제 합병에 대항하여 티벳에서 봉기가 일어났는데, 그로 인해 약 12만명의 티벳인이 학살되고, 수많은 사원이 불에 소멸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달라이 라마는 3주에 걸쳐 눈보라를 뚫고 58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산을 넘어 인도로 망명했습니다. 이렇게 거의 60년동안, 망명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도 밝은 표정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달라이 라마에게, 누군가 물었습니다. “그대는 그렇게 오랫동안 나라를 잃은 설움속에 살았는데, 왜 우울해하지 않습니까?’ 그 때 우문현답인가요? 멋진 답이 돌아왔습니다. “만약 바꿀 수 있다면 싫어할 것이 무엇이며, 만약 바꿀 수 없다면 싫어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바꿀 수 있다면, 우울해 할 일이 하나도 없고,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우울해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멋진 말에 달라이 라마는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절망은 어디에나 있고, 긍정도 어디에나 있다’입니다. 세상에는 절망과 희망이 함께 공존하는데, 그 중에 절망을 선택하는 것도 바로 내 자신이고, 희망을 선택하는 것도 바로 내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서, 염려하고 우울해하고, 절망가운데 신음하며 살 수 있고, 내가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우리는 모든 염려를 벗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소망가운데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쓸데없이 염려하지 마세요.’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은 약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에게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가지 일로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고민함으로서 키를 한 자라도 더 자라게 할 수 있다면 염려할 일이 어디에 있고, 또 키를 한 자라도 더 자라게 할 수 없다면, 도대체 우울해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라이 라마가 절대로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말씀을 그 다음에 이어서 하셨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 6:30절)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믿음은 ‘주님이 내 모든 염려를 다 해결해 주신다는 확신’입니다. 주님을 믿을 때, 우리는 언제나 모든 염려를 벗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소망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그런 확신으로 우리는 모든 염려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어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신앙은 달라이 라마처럼, 염려해 보아야 아무 소용 없으니 그저 염려를 포기하고 잊고, 맘 편히 살라는 태도가 아니라, 믿음으로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그 염려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맛보고 그렇게 실제적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자의 삶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 십자가에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앞에 나오면, 오직 그분의 은혜로 귀신들린 자는 귀신들에게서 놓여나고, 병든 자는 고침받고, 절망 가운데 있는 자 희망을 보게 되고, 삶의 모든 문제 해결받고, 포로된 자, 억눌린 자, 모두 자유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앞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 범사에 참된 자유와 평강과 은혜를 충만히 누리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샬롬. 2017.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