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고통하는 마음
Com-passion

수 년 전 ‘도가니’라는 영화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 에 바탕을 두어 만들어졌는데, 청각 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교장을 비롯한 교 직원들이 저지른 폭행과 몹쓸 짓들에 대한 고발 내용입니다. 그런데 제가 주목 한 것은 다른데 있습니다. 그 장소가 전라북도 무진이라는 꽤 두메 산골이었고 학교 이름 도 광주인화학교였다는 점입니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체면 문화속에 살아왔습니다. 내 안 의 못난 부분은 어떻게든 감추고 살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축복속에 모두 건강해서 정상인으로 태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순간, 마치 저주의 낙 인이 찍힌 사람들처럼, 저들은 모두 어둠속에 거해야 했습니다. 돈 없는 사람들은 그 좁은 벽장속에 아이를 감추고 키웠고, 돈 있는 사람들은 애들을 전라도, 무진 깊은 숲속에 위치 한 감옥 같은 시설로 보내, 말도 못하는 아이들은 온갖 인권이 유린되는 그 공간에서 숨도 못쉬고 죄인처럼 살아야 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장애인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장애인을 감추었던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1987년 미국에 와서 놀란 것이 있었습니다. 시각 장애인을 처음 보았습니다. 한 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각 장애인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안내견을 데리고, 지팡이 짚고 혼자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기 어려운 광경입니다. 그렇게 시각 장애인을 보게 되면서,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표지들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앞에도 있는 길바닥에 새겨진 점자 표지들을 어디서나 보게 되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버튼에 달려 있는 점자 표지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생각은 이곳엔 이렇게 도 장애인이 많은가였습니다. 캘리포니아 인구의 무려 10%가 장애인이라고 하지요? 그러 나 미국은 장애인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장애인들을 벽장속에서 해방시켜, 백주 대낮에 사람들 사이에서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였습니다. 제 친척중에 Austic 자폐 장애인이 있습니다. 한국같으면 부모는 죄인아닌 죄인이 되어 평생을 고통가 운데 살아야 하는데, 미국 학교의 자폐 아동에 대한 배려가 참으로 눈물 겨웠습니다. 특수 아동 전문 선생님이 함께 하여, 자폐 학생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학교 다니는 내 내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장애우를 섣불리 전라도 무진 저 깊은 산속 특수 아동 학교 같은 곳으로 격리하지도 않았습니다. 일반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게 해 주고, 다 른 아이들에게 함부로 멸시하거나 차별하지 않도록 교육했습니다. 그 학생은 그런 환경속 에서 훌륭하게 성장하여, 장애인을 배려한 직장에 취직하여 사회구성원으로 현재, 멋지게 자신의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름다울 미, 나라 국, 아름다운 나라입 니다. 부자 나라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긍휼을 실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나 라입니다.
오늘은 컴패션 주일로 지킵니다. 영어로 컴패션은 com-함께 라는 말과 passion 고통이라 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 의미는 ‘함께 고통하다’입니다. 함께 고통하는 마음이 컴패션이 요, 한국어로는 긍휼 혹은 자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아름다운 나라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지금까지 컴패션에 동참하여, 가난이라는 장애로 인해 꿈꾸 지 못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아름다운 천국을 이 땅에 이루 는 일에 더욱 크게 쓰임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히 더하여 넘치기를 축 복합니다. 샬롬. 2019.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