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행복하여라
Happy are the peacemakers

창세기는,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로,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죄가 오기 전에, 사람은 서로를 정말 한 몸처럼 사랑했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몸에서 나왔고, 그런 하와를 아담은 ‘내 살중의 살이요, 내 뼈중의 뼈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몸처럼 상대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가웠던 부부관계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하고 난 후에 급격히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죄를 추궁했을 때, 아담은, “…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답합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기 전에 아담은, “내 살중의 살이요, 뼈중의 뼈”라고 낮뜨거운 사랑고백을 했었는데, 범죄후에 아담은 한순간에 태도가 돌변하여, 여자때문에, 그리고 그 여성을 주신 하나님때문에 자신이 잘못하게 되었다고 변명합니다. 부부싸움의 시초입니다.

이런 부부아래 태어난 자식들이 온전할리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먼저, 가인과 아벨이라는 아들들을 두었는데, 가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 질투하여, 들에 있을 때, 동생을 쳐 죽이고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됩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이후로, 인간사에는 온갖 종류의 다툼과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인간사에 분쟁은 그칠 수 없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인간관계에 진정한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한 제국이 무너지면, 잠시 평화가 오는 듯싶다가 곧 다른 제국이 일어나 나라들을 침략하고, 빼앗고 죽이고, 정복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 제국이 세상을 다스릴 때였습니다. 로마는 수많은 정복 전쟁을 통해서 그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로마에 대적하는 상대를 로마는 힘으로 굴복시켰고, 그 백성들을 노예삼았습니다. 로마는 가공할만한 힘으로, “팍스 로마나”, 세상에 평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이룬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폭력과 억압, 그리고 착취로 이루어진 거짓 평화였습니다. 힘에 의해 자신의 소유와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 신분이 된 사람이 그 힘에 굴종하여, 생긴 평화입니다. 자유와 맞바꾼 평화, 인간의 기본권인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맞바꾼 평화입니다. 이 세상엔 진정한 평화가 없습니다. 옛날엔, 집에서 소리지르고 어린 자녀들과 힘없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들을 ‘그저 나 한 사람만 입 다물고 꾹 참으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집안의 평화를 위해 무조건 참아 주었던 어머니들이 있었습니다. 폭력에 뜻없이 무릎꿇은 어머니의 희생으로 인해 억지로 만들어진, 그런 평화는 진정한 평화는 아니었습니다. 예수없는 세상에 이루어진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정욕과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온전한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런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보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로마제국과 싸워, 백성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자유, 경제적으로 소유하도록 돕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근본적인 정욕과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여, 서로 더불어 함께 사랑하며 자유롭게 상호 존중하고 복종하며 살아가는 그런, 의와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상에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이룰 수 없는 온전한 평화가 예수 십자가 은혜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씻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동시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놀라운 화평이 서로 원수된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정에서, 교회에서, 이 사회에서 그리고 국가간에, 언제 어디서나 화평케 하는 일에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2.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