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의 치타공에서 유복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유누스는 치타공의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와서 밴더빌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72년 방글라데시 치타공으로 돌아가, 치타공대학 교수가 됩니다. 그러나 유누스는 자기가 대학에서 배운 서구 경제 이론이 방글라데시와 같은 개발도상국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글라데시의 실제 삶이 반영된 실물경제를 알고 싶어, 1974년 캠퍼스 근처에 있는 조브라 마을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조브라 마을에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고리대금업자가 일주일에 10%의 이자를 요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루에 10% 이자를 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이자를 1년 치로 계산해 보았더니, 연간 3000%가 넘는 천문학적인 이자율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갖고 열심히 일해도, 빌린 돈을 갚고 나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가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유누스는 그 마을에서 소액 대출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그들에게 필요한 자금이 겨우 27달러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 자신의 지갑에서 27달러를 꺼내서 42명의 여성들에게 무담보로 빌려주었습니다. 대출을 받은 여성들은 바구니를 만들어 팔았고, 빌린 돈을 빠르게 갚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 은행이 ‘그라민 은행’입니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 언어로 ‘마을’을 뜻합니다.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지난 2006년 자신이 설립한 그라민 은행과 함께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라민은행이 연이자 20%로 소액 대출해 주면서도 무려 98%의 대출급 회수율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자, 금융에서 소외된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무담보로 소액의 창업 자금을 지원해 주는 마이크로 크레딧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원래 가난한 사람의 자활을 도우려고 시작한 사업이 1990년대 들어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지나친 상업화 경향을 나타내게 되었고, 일부 마이크로 크레딧 기관이 고리대금업자와 비슷한 정도로 높은 이자율을 부과하는 사례가 등장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대출을 받아, 대출자의 60%가 대출 상환에 관한 고려없이 카드 돌려막기 식으로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아 돈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대출을 받고 부채로 고통받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보고되면서, 소액 대출이 가난한 사람에게 생명줄이 아니라 죽음의 덫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유누스 총재도 이런 비판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유누스는 ‘그의 소액 대출이 빈곤 완화라는 명목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비난을 들으며 2011년 그라민 은행 총재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한 때, 제3세계의 빈곤퇴치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까지 받은 사람이, ‘사채업자 유누스’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한순간에 몰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 병든 자, 억눌린 자, 포로된 자를 해방시키는 것은, 인간의 지혜와 힘과 재능만으로는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힘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 누구도 홈리스 거지 인생을 바꿀 수 없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장애인 거지는 새로운 삶을 얻었고, 예수님을 만났던 소경 거지 두 사람도 두 눈을 뜨며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만이 희망이요, 생명이요 구원이기에, 그 예수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이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요, 희망이요, 구원이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을 예수 이름으로 죄와 저주와 가난과 질병과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는데 존귀하게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8.24.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