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사는 삶
Bonus Life

년전 맹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속이 메스껍고 음식을 받지 못하다가,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병원에 어떻게 갔는지도 모릅니다.  알고보니 급성 맹장염이었고, 수술을 받고 나자 곧 괜찮아졌습니다.  의술이 크게 발전한 오늘날, 특히 미국에서 맹장염으로 죽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오래 전 한의학밖에 없었던 한국에서는 맹장염으로 죽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100년전에 제가 태어났다면, 맹장염으로 저도 고통가운데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 수명은 47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죽었다 다시 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덤으로 사는 삶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하루 하루가 소중하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로에게 고마울 뿐입니다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의 많은 문제들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죽음 체험 하루 피정’에 참여했습니다.  그 프로그램 순서에는 ‘관’속에 들어가 누워보는 시간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관에 들어가는데,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마다 눈물을 글썽인다고 합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확실히 다른 것입니다.  관속에 들어가 머리를 바닥에 대고 반듯이 누운 후, 관 뚜껑을 닫고 천으로 덮으면, 관속은 완전한 어둠이 됩니다.  눈을 떠도 어둠, 눈을 감아도 어둠.  그리고 바깥세상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아끼는 모든 물건이 관 밖에 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온 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아 죽으면, 바깥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관 안으로 가지고 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몸도 썩어들어가면, 남는 것은 단 하나, 영혼입니다.  그 때 썩어질 세상 영광을 버리고, 썩지 아니할 영혼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해인 수녀시인이 있습니다.  그분은 용서가 어려울 땐 미리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며, ‘상상 속의 관’안에 들어가 본다고 합니다.  “‘내일은 내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데’라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 의외로 용서가 잘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을 잘 살 수 있는 지혜는 어쩌면 죽음에 있습니다죽음안에 거듭남이 있고, 죽음안에 썩어질 영광에 대한 포기가 있고, 죽음안에 영원한 것들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십자가 죽음안에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죽음앞에서 인간은 진실해집니다지혜로워집니다그리고 거룩해집니다또한 영원한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은 송년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2015년 을미년 새해를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은 오늘 십자가 죽음을 생각함으로서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십자가의 죽음을 오늘 나의 죽음으로 생각할 때, 하루 하루는 나에게 덤으로 주어진 축복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로 2014년 주일은 더 이상 우리에게 없습니다.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2015년은 우리에게 덤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매일 매 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썩지 아니할 영광을 바라며 달려가는 지혜로운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