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남가주에 살면서 Fuller 신학교를 다닐 때, 저희 학교에 텍사스 시골에서 온 한인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영어로만 말하고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그분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에 왔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면, 한국말을 잘 할 때 미국에 와서 오히려 영어가 서투를 수도 있는 나이인데, 한국말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분은 완전히 한국 사회와 단절된 텍사스 시골에 이민와서 순전히 백인들만 사는 곳에서 십 수년을 영어만 사용하며 살다보니, 한국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잊어버린 듯싶었습니다. 한국인인데 한국말을 전혀 못하니, 한국인들과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인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한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 미국인도 아니고, 늘 외로워 보였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선뜻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본래 자기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적합치 않다고, 주님의 부르심을 완곡하게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이런 모세의 거절은 어찌보면 매우 믿음 없는 불손한 태도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매우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라서, 히브리말을 잘하지 못했는데, 이제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는 목동으로 40년을 보내면서 애굽말도 거의 잊어서, 그 어떤 언어로도 말을 잘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80세 노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면, 장애인 아닌 장애인처럼 살게 됩니다. 우리 이민자들은, 모세의 이런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합니다. 나이 들어 미국에 와서 한인 커뮤니티에서 생활하게 되면, 아무리 이 땅에서 20년 30년 살아도, 영어를 잘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마치 장애인처럼 손짓 발짓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애처럼, 말을 하게 됩니다.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 길에 서게 되면, 근처 자동차 수리업체에 가서, 자기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데, 영어로 별로 아는 단어가 없으니, ‘my car, die, street, help’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됩니다. 미국에 오래 살아도, 본토 미국인들과 어울리기 보다, 그저 육체 노동을 하면서 하루하루 먹고 살다 보면, 영어가 딱 생활 영어 수준에 머물게 되고, 만약 한국 신문도, 한국 사람도 만나지 않고, 완전히 한국과 동떨어진 문화속에 오래 거하다 보면, 한국 말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모세처럼 그 어떤 언어로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언어 장애 이민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해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그리고 한인 교회들은 4월 20일을 전후하여, 장애인 주일로 지킵니다. 장애인 주일의 목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재확인하고,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며 장애인의 권리와 복지를 신장하기 위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사명을 다짐하고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는 모두 장애인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필요없다’는 말씀처럼 죄인된 인간이 장애가 없다고 하면,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죄로 인해, 심리적 장애, 정신적 장애, 영적 장애, 신체적 장애를 안고 살아갑니다. 장애인 비장애인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장애인으로 서로를 돌보는 장애인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장애를 허락하신 장애인의 주인, 하나님께는 놀라운 뜻이 있습니다. 그건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둘째는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애인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되게 하시고, 놀라운 출애굽 구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장애인임을 인식하고, 장애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다른 장애인들을 ‘서로 사랑’으로 돌보아, 주안에서 한 몸된 공동체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역사를 함께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