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되신 주님을 본받아
Imitating the Good shepherd, our Lord

요즘은 식당이나 호텔, 혹은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든 참여자의 review를 참조하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식당이나 호텔을 이용한 손님들이 남긴 댓글을 보고, 좋아요, 싫어요, 비율을 보고,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여, 행동합니다. 평가 글이 좋지 않은 경우엔, 자연히 그 장소 이용을 꺼리게 됩니다. 누군가 남긴 댓글이, 다른 사람에게 생각보다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때로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몇 년 전 한 가수 겸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악성 댓글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자살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악플로 인한 연애인의 자살 소식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오래 전, 최진실씨가 안재환의 사망과 관련된 악플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악플은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들이 당하는 고통은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 결코 적지 않습니다. 악플로 인한 사건과 사고가 많아지자,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결국 댓글 실명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악성 댓글로 인해 심각한 피해자가 속출하자, 몇 몇 포털에서는 댓글 서비스를 폐지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반응을 알 수 있는 댓글은 선한 기능이 있습니다. 칭찬과 격려와 같은 선한 글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고, 더욱 성장을 위한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좋은 글을 올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남기는 댓글을 조사해 보니, 선플이 47%, 악플이 53% 정도였다고 합니다. 거의 절반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반일 수 있다는 통계입니다. 선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반, 그 반대인 경우도 반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반드시 영향을 받습니다. 누군가 불평하는 말을 해도, 그 불평이 번지게 됩니다. 아무리 멋진 물건이라도 누군가, 험을 잡으면, 더 이상 멋지게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누군가, 악플을 달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심정이 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동조하게 됩니다. 반대로, 허술하게 보이는 물건이라도, 좋게 해석해 주면, 멋진 작품처럼 보이게 되고, 별로인 사람도 선플을 달면, ‘오, 그 사람에게 그런 좋은 점도 있구나’하면서, 상대방이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고,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언제나 두가지 세력이 공존합니다. 늘 우리 앞에는 선플이 있고 악플이 있습니다. 때로 누군가를 비방하고 험담하는 악플은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묘한 매력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악플에 동조합니다. 그러나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그런 악플을 겪은 사람은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그리고 심하면 자기 목숨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뵙지 못한다’(요삼 1:11)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로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늘 선한 말로 은혜를 주셨고, 또한 착한 행실로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상한 심령을 위로하시고, 가난한 자를 붙들어 주시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십자가 보혈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선한 목자가 되시어,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을 본받아, 늘 선한 말로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또한 선한 행실로 어둔 세상에 빛이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3.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