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바 주님
Tying us on His back

약 30 수년 전에 미국에 이민 왔을 때, 저는 미국에 아기를 ‘어부바’하는 포대기가 없는 것을 보고 참 놀라워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끌고 다녔습니다. 혹은 아기를 들더라도, 등에 업는 법이 없었습니다. 늘 앞으로 안았습니다. 끈으로 띠를 만들어 앞으로 안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안으면, 부모의 손과 행동이 등에 업는 것에 비해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닥치는 위험에 아이를 보호하기도 용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서양 것이라면, 다 좋은 것인 줄 아는데, 뜻밖에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어부바해서 아기를 등에 업는 포대기만큼 아이를 쉽게 그리고 완벽하게 또한 안전하게 엄마와 이어주는 육아 용품은 없습니다. 어부바해서 포대기를 해보면 알지만, 앞으로 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오랫동안 아이를 업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 년전에, 맨하튼 육아 용품점에서 ‘한국식 포대기’가 큰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어부바, 포대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수리 날개라는 포대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감싸고, 등에 업어, 출애굽시켜,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갓난 아이처럼, 자신들의 삶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애굽에서는 바로의 압제에 눌려, 숨도 못쉬고 살았습니다. 산파에게 태어나는 남자 아이를 죽이라고 하면 죽여야 했고, 태어난 남자아이를 나일강에 던지라 하면, 그리해야 했습니다. 시키는 노동을 죽도록 해야 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잃었습니다. 그렇다고 감히 애굽 사람들에게 대항하여, 싸울 수도 없었습니다. 농기구뿐인 저들이, 훈련받은 정예 군사들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시키는대로 노예 생활을 하면서 연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들을 어부바 해서 구원하셨습니다.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하나님 등에 업혀 있기만 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등에 업은 하나님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절대권력자 바로와 친히 싸우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언제나 상대를 쉽게 이기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열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굴복시키고, 홍해 앞에선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업어서 건너게 하셨습니다. 광야 길에 들어섰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먹을지, 마실지, 입을지’ 아무 대책이 없었지만, 그 모든 필요를 이미 다 아시는 ‘어부바’ 주님이, 그 때 그 때마다, 늘 칭얼대고, 짜증내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주셨습니다.

신약 성경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붙어만 있으면, 우리가 어부바 주님의 등에 딱 붙어서 그분의 말씀안에만 거하면, 많은 열매를 저절로 맺고,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구하여 다 이룬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히 동일하신 어부바 주님이 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어부바’ 하고 등을 내미시는 그분의 등에 냉큼 업히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앞서시는대로, 그분의 등에 꼭 붙어, 그분의 인도대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그분이 쉴만한 물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것이요, 그분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등에 업힌 저와 여러분들을 지켜 주실 것이요, 원수의 목전에서도 상을 베풀어,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 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늘 ‘어부바’ 주님의 등에 업혀 언제나 기쁨과 감사, 평강과 축복이 여러분들의 삶에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합니다. 2021.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