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같은 제사장
Royal priests

오늘날 축구팬들은 오랫동안 금세기 최고 축구 선수로 꼽히는 포르투갈의 호날두와 아르헨티나의 메시를 두고, ‘누가 과연 최고 선수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여 왔습니다. 축구 실력만큼은 둘 다 신계에 있다고 말할 정도로, 둘의 실력은 거의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둘 중에서도 누가 최고냐는 그 논쟁이 지난 카타르 월드컵에서 메시가 속한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완전히 메시의 승리로 매조지를 했습니다. 호날두와 메시의 결정적인 차이는, 어시스트에 있습니다. 호날두는 남의 패스를 받아, 내가 빛나는 선수입니다. 그러나 메시는 자신도 골을 잘 넣지만, 다른 사람에게 패스도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메시는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하면서 자신도 빛나는 선수입니다. 메시는 호날두보다 훨씬 나은 팀플레이어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태도의 차이가,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오래 전 미국에 와서, 크게 놀란 것은, 교육 시스템이었습니다. 유치원 어릴 때부터, 둥글게 팀별로 앉게 하여, 교육하는 모습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팀 과제물이 많았습니다. 서로 도와서, 함께 과제를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팀원들은 서로 적이 아니라, 동료였습니다. 상대를 잘되게 하려 해야 나도 역시 그 안에서 잘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교육은 제가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도록, 거의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때까지 한 반에 거의 70명 학생들이, 모두 선생님을 바라보고 자리에 앉아, 동료들끼리 피나게 경쟁합니다. 등수는 늘 1등에서 꼴등까지 매번 시험마다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상대 평가에 의해서, 대학이 결정되고, 미래가 결정됩니다. 이렇게 같은 친구들끼리 경쟁하며, 상대평가로 순위가 결정되는 세상에서, 다른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내게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대신에, 다른 사람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 됩니다. 이런 교육을 오랫동안 받다보면, 좋지 않은 삶의 태도가 형성됩니다. 늘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살게 됩니다. 나보다 잘 살고, 나보다 행복한 사람들 때문에 내가 못 살고, 불행하게 되었다고, 늘 불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공동체 분위기가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만들어지면, 서로의 앞 길을 막아 결국 그가 속한 팀이나 공동체는 약해져 이류, 삼류가 되고, 그런 공동체에 속한 자신도 역시 이류, 삼류로 떨어져 불행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도 살리고, 그 공동체 안의 일원인 자신도 행복해지는 비결은, 오직 한 길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입을 열 때마다 남의 결점을 잡아 험담하고 깍아 내리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남의 불행을 두 손모아 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중심으로 잘되기를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시대에, 제사장의 주요 사명 중에 하나는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축복기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복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신약 성경은 예수 믿는 모든 이들을 가리켜,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세상 사람들을 예수이름으로 축복하여 세상을 복되게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나. 남을 복되게 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부부간에 서로 복을 빌어주고, 부모 자식간에 복을 빌고, 형제와 이웃을 위해 그리고 심지어 원수된 자를 위해서도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상을 복되게 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늘 서로 복을 빌어, 세상을 복되게 하고, 그 안에서 자신도 복을 받아 풍성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3.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