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행복하여라
Happy are those, hungry and thirsty

과거에는 주리고 목마른 상태가 고통이었고, 괴로움이었고, 슬픔이었고, 저주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던 옛날에는 사장님 모습이 오늘과 달랐습니다. 늘 몸이 크고 배가 산만하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노동자는 빼짝 마르고, 늘 서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늘 안락의자에 빙글빙글 편한하게 앉아서 일하시는 배부른 사장님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주리고 목마른 상태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리고 목마르기 때문에, 뭔가 열망을 가지고 꿈을 꾸면서 달려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한국을 변화시킨 가장 큰 동력은 온 국민의 배고픔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 배고픔을 면하고자, 중동으로 월남으로 그리고 독일 간호사, 광부로 달려갔고, 그 배고픔을 면하고자 ‘잘 살아 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삽질 더 한 번하고 달려가다 보니까, 오늘 같은 대한민국을 이루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실제로 주리고 목마른 상태는 저주가 아니라, 복이 됩니다. 이민 1세가, 말하나 제대로 통하지 않는 미국까지 건너오게 된 것은, 사실 배고픔입니다. 내 인생, 절대로 밥도 제대로 못먹고 살아서는 안되겠다, 한국에서 절대로 보리밥에 김치 깍두기 점심 도시락도 없어서 수도 꼭지 맴도는 삶이 되서는 안되겠다, 나도 한 번 고기 먹고 잘 살아보자는 그런 기본적인 생존 본능, 그리고 내 인생 뿐만이 아니라, 내 자식들에게는 처절한 가난을 절대로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우리 많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달랑 이민가방 몇 개 들고, 태평양을 건너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절박한 배고픔이 이 미국 땅에서 그 누구보다도 빨리 자리를 잡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민 1세는 영어 한 마디 제대로 못하면서도, 이민와서 집사고 차사고, 자식 좋은 대학 다 보내고, 나름대로 자리잡고 잘 삽니다. 그런데, 2세는 1세보다 영어도 잘하고 키도 크고 잘 생기고, 능력도 있는데, 이상하게 비교적으로 이겨내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미국 부자들이 자기 자녀들을 어릴 때, 가난한 아이처럼 맥도날드 종업원으로 아르바이트 시키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stay hungry’- 배고픈 상태에 있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 과정에서 사장님들의 모습이 과거완 사뭇 달라졌습니다. 대기업 회장님들은 한결같이 날씬한 몸매를 갖고 있습니다. 대신에 일용직 노동자들은, 미니멈 웨이지에도 옛날 사장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사장님이든 아니든, 거의 아무도 배가 나오는 모습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 밥 많이 먹으라고 하면, 이젠 되었다고, 적당한 선에서 대부분 숫가락을 놓습니다. 고기 반찬은 멀리하고 푸성귀만 조금 드시다가 그만 둡니다. 대부분, ‘stay hungry’ 배고픈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를 씁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가 고파야, 음식을 맛있게 먹게 됩니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는 산해진미도 고마운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배고픈 상태에서는 김치 깍두기 반찬도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이제는 누구나 다 stay hungry 한 상태가, 육신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정신적인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 stay hungry 주리고 목마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원하는 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리고 목마른 자는 다 주님께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배부르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요 6:3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hungry and thirsty for God”, 주님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 찾아 헤매이듯이 주님을 타는 목마름으로 구하여 주님 주시는 축복으로 배부르며 행복한 우리 모두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2.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