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연못
A Small Pond in a forest

한 번만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고 오랫동안 가사가 마음에 남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그런 노래 중 하나로, 김민기라는 탁월한 음악가가 작사 작곡하고, 양희은씨가 불러 유명해진 작은 연못이라는 동요 같은 노래가 있습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이라는 가사까지는 장조로 밝고 명랑하게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노래가 단조로 바뀌면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가사가, 음산합니다.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마리”가 서로 싸워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결국 살아남은 한 마리 붕어마저도 죽게 되어, 연못 속에는 아무것도 살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연못이라는 작은 세상에, 두 마리가 경쟁적으로 살다가, 상대방을 죽여 없애면 모두 자기만의 세상이 될 줄 알았지만, “절대 권력은 절대 타락한다”고 결국 남을 해친 시체로 인해 세상이 썩고 더럽혀져서, 그 자신도 같이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는 교훈이 담긴 노래입니다.

 

사람들은 늘 남보다는 자기를 우선할 때가 많습니다. 남은 어떻게 되든 자기만 잘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자로 사람 ‘인’자가 두 사람이 기대어 선 모습인 것처럼, 다른 사람이 없으면 그도 역시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나만큼 다른 사람의 존재도 중요합니다. 경주 최부자댁은 300년 12대에 걸쳐 만석꾼을 배출한 부자 가문입니다. 부자 3대를 못간다는 말이 있는데, 무려 12대를 이어간 경주 최부자댁에는 다른 부자들과는 구별된 유명한 가훈이 있었습니다. 그 가훈에는 크게 6가지 조항이 들어 있었는데 그 중에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내용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최부자댁이 300년동안 우여곡절을 다 겪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며 부를 오랫동안 누릴 수 있었던 까닭은 그 가문이 적절하게 재물을 풀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최부자댁은 만석 이상의 소출이 생기면 소작료 배분 방식을 바꾸어, 종래의 소작료 5:5에서 6:4 혹은 7:3으로 소작료를 낮추어 소작인에게 많이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들면, 과감히 곡간문을 열어서 사방 백리 이내에 굶는 사람들이 없도록 구휼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최부자댁이 너그럽지 않고, 극심한 흉년으로 모두가 굶어 죽게 되었을 때, 곡간문을 열어 구휼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반드시 폭동이 일어나서, 세상이 뒤집혀 최부자댁은 오래 전에 절단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돌보지 않으면, 숲 속의 작은 연못 같은 세상에 사는 붕어 같은 인생들도 결국 모두 다 썩어 들어가 공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요 모두가 사는 길이 됩니다.

 

인간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듯이, 교회도 교회와 교회 사이에서 존재하고, 또한 교회 사이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막 가운데 혼자 서 있는 나무는 없습니다.  나무는 나무 숲속에서 건강하게 잘 성장합니다. 세상 모든 교회가 멸망하는데 내 교회만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  주변 교회가 망하면 ‘마치 작은 연못 속의 붕어 한 마리가 죽어 연못 물이 썩어 들어가 남은 붕어도 죽게 되듯이’ 근처에 있는 다른 교회도 망하게 됩니다. 사실, 내 교회가 안전하게 세워져,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주변에 건강하고 든든한 교회들이 내 교회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바람막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 시대에 교회들은 서로의 약함을 돌보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이방인 교회를 세우고, 그들을 영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교회들은 주기적으로 연보를 모아 보내어 예루살렘 교회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도왔습니다. 교회들이 서로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함께 든든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네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서로 돕고 섬겨,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데 존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5.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