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희망 (Audacity of Hope)

  건국과 함께 미국은 분명 WASP (백인, 앵글로 색슨계, 개신교도)로 근간이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비록 흑인 노예 제도가 1863년 남북전쟁의 종식과 더불어 공식적으로 폐지됐고, 1964년 인권법제정으로 인종차별이 제도적으로 금지됐지만, 노예제도의 후유증인 흑백의 갈등은 여전히 뿌리깊게 사회 전반에 남아 있습니다.  겉으로는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따라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아메리칸 드림’을 말해왔지만, 지금도 미국 주요 대도시 도심의 흑인 거주 지역은 ‘범죄의 온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흑인들의 인구 비율을 미국 전체 인구의 13%이지만, 미국의 정치 사회에서 흑인들의 위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50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흑인은 오바마가 유일합니다.  또 네바다와 인디애나, 콜로라도, 뉴멕시코 등 미국 전체 주(州)의 절반인 25개 주에서는 건국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흑인 의원도 배출하지 못했고 역대 흑인 주지사는 겨우 4명에 불과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흑인 여성으로 미국의 첫 국무장관이 된 콘돌리자 라이스는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인종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는 미국을 세운 백인들에게 부여했던 기회를 흑인들에게는 똑같이 제공하지 않는 ‘태생적 결함(birth defect)’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배경가운데에서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흑인계 버락 오바마가 당선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이 독립선언을 통해 건국한 1776년 이후 232년만의 일이요, 링컨이 흑인들에 대한 노예 해방 선언을 한 후 145년만의 일입니다.  실로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한 기적적인 역사적 사건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가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에 하나가 적어도 그의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꿈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는 백인 어머니와 재혼 인도네시아 출신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의 카톨릭계 학교에서 수년간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학교 초등학교 3학년때, ‘나의 꿈’이라는 주제의 작문을 하게 되었는데, 오바마는 ‘나의 꿈은 미국 대통령’이라고 썼습니다.  오바마의 동급생이자 현 인도네시아 국회의원인 데위 아스마라 오에토조는 어릴 때,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해서, 그 당시에는 웃긴다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담대한 희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바마 이전에 흑인 상원의원이 하나도 없었던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생각하면, 흑인 대통령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담대한 희망과 끊임없는 노력이 결국 불가능하게 보였던 꿈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수년전부터 저는 앞으로 미국에 한국계 대통령이 나올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함께 기도하자고 도전했습니다.  이런 말에 웃기는 일이라고 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한 때 인도네시아에 살았던 키작고 바짝 마른 곱슬머리 초등학생 3학년이 앞으로 수십년후에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시작은 담대한 희망에 있는 것입니다.  샬롬.